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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골목길

石泉 2007. 11. 8. 14:24
[내 마음 속의 이곳] ④ 소설가 조갑상-바다가 보이는 골목길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졌던
거미줄 같은 수정동 골목엔
동네사람 엮어준 마을 우물,
산복도로, 도랑, 나른한 철길…
유년을 채운 '순수의 시간' " 

빌딩에 가려지거나 컨테이너 하치장으로 변했지만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풍경은 소설가 조갑상에게 40년 전 세월을 단숨에 이어주는 마법을 부렸다. 사진=김경현기자 view@busanilbo.com
아버지들은 언제부터 도시로 나와 자식들을 도회지 아이들로 키웠을까. 1950년대 중반, 수정동 언덕의 그 거미줄같이 이어진 골목길에서 뛰놀며 나는 도시 아이로 자랐다. 전차와 버스가 다니는 고관입구 큰 길을 제외하고 그 동네는 모두 골목으로 통했다.

골목은 막다르게 막힐 듯하면서 다른 골목으로 연결되어 '우리 동네'를 좌천동과 초량으로 이어주면서 구봉산과 수정산으로도 쉬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철길을 건너 동아제분 옆 바다로 갔다. 그 바다에는 보르네오인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해 온다는 원목들이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게 떠 있었다. 그 위를 건너뛸 때마다 둥근 원목들은 빙그르르 돌았고 등을 태우는 뜨거운 태양까지 같이 물속에 빠지는 듯해서 아찔아찔하면서도 신이 났다.

당시 놀이는 거칠었다. 조금이라도 평평하고 넓다 싶은 골목에서 하던 딱지치기, 죽말타기, 깡통차기. 그리고 철길에서 주워온 석필로 누구 집 형하고 누나하고 연애한다는 낙서하기. 무엇보다 제 맛이 나는 놀이는 어스름밤의 도둑놈잡기였다. 낮에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던 길이지만 순경이 된 아이들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캄캄한 골목 입구에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야 임마, 니 그 안에 숨었제!'라고 고함만 칠 뿐이었다.

그렇게 고단하게 뛰놀다 잠자리에 든 날에는 이상하게도 새벽 일찍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들의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지금도 피곤하고 힘든 날이면 내가 그 골목길 길 가 집에 누워 있는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동네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일본식 저택과 배집처럼 길게 이어진 철도관사가 남아있던 그 동네에서는 철도와 부두가 가까웠다. 시골에서 도시로 갓 나온 아버지들은 주로 거기서 선로반원이나 가대기 일을 했다. 그리고 범일동 미군 제 5보급창에 노무자로 나가는 아버지를 둔 아이는 어쩌다 통조림이며 초콜릿을 가져와 우리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아버지들은 단순하고 거칠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골목이 시끄럽게 고함을 질렀으며 복날에는 뒷산에 올라가 개를 잡아먹었다. 어머니나 누나들 중에는 분을 바르지 않아도 얼굴이 하얀 이들이 있었는데 고무신 공장에서 고무 가루를 많이 마셔 그렇다고 아이들은 쉬쉬거렸다. 이웃들은 누구 집 큰아들이 언제 배를 타고 나갔는지, 또 누구 집에 언제 시골에서 쌀을 부쳐왔는지를 다 알면서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거나, 빌려간 돈이나 물건 때문에 아웅다웅 다투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도 사정이 나빴을 때 유일한 동네 급수원이었던 우물을 두고는 신기하게도 모두들 '우리 동네' 사람이 되었다.

"누구 집에 세든 여편네 못쓰겠더라 라는 입방아도 근본 원인은 우물에 있었다. 위생관념이니 그런 것 하고는 관계가 먼 동네 어른들의 우물에 대한 태도는 참으로 이상할 정도였다. 간섭 없이 내놓고 키우는 아이들이지만 우물가에서 뛰놀거나 더럽히는 것을 어머니들 중 누군가가 보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다('은경동 86번지'중에서)." 그 우물은 물 좋다고 소문이 난 것도 아니고 여름에 별나게 시원하지도 않았다. 동네의 자질구레한 일에는 이해관계가 엇갈렸지만 우물 관리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의견이 맞았다. 아버지들은 술 마시고 싸우다가도 '우물물 마시고 술 깨고 와서 이야기해라'라는 소리를 했으며, 아이들은 '니는 우리 동네 우물물 안 마시나?'라는 말로 같은 동네 산다는 걸 단박에 일깨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촌사람들이었던 어른들에게 개천 옆 암벽 아래에 자리한 그 우물은 삭막한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의 두레공동체 의식을 되살려 주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남남으로 모여들어 약삭빠르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들은 본래의 자신들을 회복시킬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언제쯤부터인가 동네가 변하기 시작했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라고 놀려먹던 전쟁 때 피란 내려온 서울 아이들이 하나 둘 제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얼마 뒤였다. 동네로 오르는 흙길에 시멘트 포장을 하고 냄새나는 '또랑'이 복개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보아도 머리가 아주 하얗던 이승만 대통령이 지나간 중앙초등학교 길 건너 철길가 동네가 먼저 철거되고 곧이어 산동네 판자들도 철거되었다.

물론 그 전후로 몇몇 죽음들도 있었다. 흔들리던 원목더미 위에서 꼬시래기를 낚고 헤엄도 치던 그 바다에서 새로 산 수경을 쓰고 잠수 자랑을 하던 용구가 다시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철길에서 석탄이나 쇠붙이를 훔쳐 팔던 민수 형이 기차에 대해서는 그렇게 빠삭하게 잘 알면서도 달리는 기차에 치여 죽고, 이승만 대통령 물러나라는 데모가 일어났을 때는 구두를 닦던 철만이 형이 총에 맞아 죽었다('가는 봄 오는 봄' 중에서).

그리고 얼마 후 군인 출신 시장이 대대적인 도시정비라는 걸 했던 것이다. 산복도로라는 낯선 이름의 길이 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리동네'의 개념에 혼란이 왔다. 어떤 아이들은 반송동이나 용호동으로 떠나고 남은 친구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맨발의 청춘을 부르면서 중앙극장, 미성극장을 기웃거렸다.

그 동네에서 우리들의 성인식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었을까. 원목 더미 밑에서 용구가 끝내 헤엄쳐 나오지 못했을 때. 아니면 우물이 공식적으로 폐쇄되어 시멘트 뚜껑이 덮이던 날? 또 아니면 전차 레일 위에 대못을 얹어 그 뜨거움을 참아가며 예쁜 단검을 만들었던 그 레일이 철거될 무렵?

그 시절에는 시간이 참으로 느리게 흘렀다.

바다로 가기 위해 건너던 철도 건널목을 한정없이 가로 막고 서 있던 꼬리 긴 화물열차처럼. 아니면 끊어질 듯 이어져 어디로든 통하던 그 나른하던 골목길처럼 시간은 지루하게만 흘러 어서 어서 어른이 되고만 싶었다. 동네 형들처럼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거나 직업군인이 되어도 좋았고, 중장비 기술을 배워도 좋았다. 지겨운 아버지들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고단한 노동을 막소주 한잔으로 달래면서 시골 인심을 마지막으로 간직했던 아버지들은 떠나고 자식들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허둥대다 이제 그 아버지들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단순하고 거칠었던 아버지들과는 달리 다들 세련되고 싹싹하게, 그러면서 이해타산에 밝은 옹졸한 중산층이 되었을까. 설령 그렇게들 되었다 해도 그건 우리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 가슴마다의 우물 하나씩을 잃어버린 세대로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얼마 전에 그 동네 골목길을 다시 가 보았다. 푸른 이끼 앉은 담장을 따라 걸으며 어느 친구가 살던 집이라는 걸 가늠하다 시멘트 포장 위에 찍힌 성급한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걸 보았다.

세월은 비바람처럼 그냥 지나갈 뿐 추억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빌딩에 조금씩 가려지고 컨테이너 하치장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여전히 내 가슴을 설레게 하며 나를 소년으로 만들었다. 사십 년 시간을 단숨에 이어주는 마법 같은 공간에 내가 서 있었다.

옛 교통부, 범곡사거리에서 시작되는 망양로에 서면 야경이 좋다. 동구에서 중구까지 도로의 길이도 만만찮은 데다 경사와 굴곡이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시가지와 북항의 풍경도 달라진다. 가슴 답답한 일이 있거나 옹졸한 마음에 부대낄 때 나는 내 유년의 순수했던 바다가 있는 망양로로 간다.

◇ 필자 약력

1949년 경남 의령 출생.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부산소설문학상과 요산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와 부산에 관한 '소설로 읽는 부산' '이야기를 걷다'를 썼다. 현 부산소설가협회 회장.

/ 입력시간: 2007. 07.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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