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명작동화보다 더 "명작"같은 어린시절

石泉 2008. 9. 22. 13:48

명작동화보다 더 "명작"같은 어린시절 | 00:05  
http://booklog.kyobobook.co.kr/zenrami/B3707462/65717
 

 제가 속을 썩일 때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을 떼시곤 합니다. "너 어릴 적에 너처럼 키운 애가 없었어~" 어느어느 방문학습지에, 무슨 브랜드 옷에, 어느 학원에 보내셨는지 꼼꼼하게 하나씩 짚어주시는 걸 듣다보면 이거 어디 소공녀가 따로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제 기억엔, 중학교1학년때까지 놀이터에서 흙놀이하고 동네공사판 모래터에서 굴러다니던 일만 남아있습니다.

 

 옛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향수를 주는 일인 것만은 확실한 것같습니다. 엄마의 학습지든, 제 모래터 기억이든 흐뭇한 웃음을 절로 입가에 띄우게 되니깐요.  잘나가던 소싯적 없는 사람들 없는 것처럼, 즐거운 추억이 없는 사람도 없을 것같습니다. 100인 100색의 고색창연한 소싯적 이야기를 훔쳐보는 쏠쏠한 재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본격소설>

 

추석연휴, 고향에 오가는 긴긴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지루하지않게 보내려고 챙겨간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 빠져 연휴내내 집에서 <본격소설>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본격소설>은 작가가 서술자로 등장하는 사소설 형식의 작품입니다. 도입부인‘본격소설이 시작되기 전의 길고 긴 이야기’에서는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의 성장과정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엿보면서 소설을 시작합니다.

 

뉴욕 교외의 롱아일랜드에서 유복하게 생활하던 미나에는 일본에서 화물선을 타고 건너와 부호의 운전수가 된 아즈마 다로를 알게된다. 아즈마 다로는 미나에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채용되고, 광학기기를 파는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하다가 벤처회사를 세워 거부가 됩니다.

 

미즈무라 미나에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미국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던 중, 자신을 찾아온 낯선 사람으로부터 아즈마 다로에 대해 듣게 됩니다. 어딘가 어둡고 차가웠던 아즈마 다로의 과거는 집념적이고 의욕적인 그의 삶을 이해하게끔 합니다. 이후에는 이 낯선 남자가 아즈마 다로에 대해 들었던 현장으로 불려가, 눈에 그리듯 별장가를 거닐며 아스라한 과거의 일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아즈마 다로와 일본 상류층의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롭지만은 않습니다. 상류층의 권태로움과 끊임없는 자기과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즈마 다로의 자격지심, 신분상승을 위한 의지 등이 얽혀 현실이나 소설을 모두 뛰어넘는 어떠한 세계를 그려냅니다.

 

가벼운 소설이나 관념, 감정을 풀어내는 소설의 모호함이 버거우셨다면, <본격소설>의 차분하고도 촘촘한 글에 푹 빠지실 겁니다. 차분한 문체와 격동적인 아즈마 다로와 그를 둘러싼 여러 가문의 일대기가 묘하게 어울려, 책을 덮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책소개를 읽어보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재구성한 것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서문에 밝히는 미즈무라 미나에의 과거 그리고 실명 운운하며 실제의 장소를 보여주는 사진을 통해, 실제로 존재했던 일을 작가 나름대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일본 신문의 서평을 빌려보자면

 

웅장하고 독특하며 꿈같고도 리얼한 소설, 거짓이면서 진실을 간직한 소설.
실로 ‘문학적 사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_마이니치 신문

 

완벽한 고전의 운명을 타고난 작품.
재미와 애수를 동시에 지니고서 오케스트라처럼 호사로운 구성으로 세부까지 공명한다.
근대문학의 왕도를 걷는 본격소설이라 해도 거짓이 아니다. _요미우리 신문

 

와 같이, 찬사가 아깝지 않은 정말 "본격"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읽는 내내 뒷장을 넘길 때마다 아쉬움이 더해지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진한 여운을 줍니다. 미나에와 아즈마 다로, 중반부의 서술자로 등장한 후미코가 되어 휘몰아치는 사건과 묘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어, 생각할수록 더한 재미를 주는 작품. 독서의 계절 가을에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추천해봅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4606547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선생님의 유년시절부터 6.25를 겪는 스무살까지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입니다. 분단과 이데올로기 전쟁을 겪은 민족사와 그 시대 민초들이 당해야만 했던 고난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힘들었던 당시지만, 여학교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를 다니기까지 그 시대의 혜택받은 삶이라 할 수 있는 시절을 엿보는 맛은 남다릅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교복을 입고 여학교를 다니고, 서울대에 다니는 묘한 우월감은 독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아주 특별하게 높은 집안도, 부자도 아닌 그였지만 스스로를 둘러싼 자존감과 당당함이 남다르게 만들었던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는 저에게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주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추천한 중학교 추천도서이기도 한 이 책은 아주 쉽게 훌훌 읽히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큼 시대를 꿰뚫는 보편적인 배움을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어른들이어도 좋고, 과거에 대한 신비감을 갖고 있는 청소년도 좋고, 아이를 올곧게 키우고 싶은 엄마아빠에게도 딱 맞는 책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추천하여도 후회하지 않는,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조심스레 다시 한번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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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던 언니오빠들의 소싯적 집안 얘기가 조금은 제 얘기인양, 허리에 양손을 곱아올리고 어깨를 으쓱해봅니다. 화려한 과거를 보내고, 지금은 그때를 회상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쓸쓸할까 생각해봅니다. 차라리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에 만족하며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걸까요, 아니면 추억할만한 영광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스러움도 견뎌낼 수 있는 걸까요.. 문득 추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초콜렛의 씁쓸한 뒷맛인양 고민해보게 됩니다.

 

 "내가 말이야, 한창 때는 이 근방에 내땅을 안 밟고서는 지나갈 수가 없었어!"  "처녀시절엔, 이 동네 남자 태반이 날 따라다녔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이라면 꼭 기억하세요. 그런 한창 때도 있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지금이 그러한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손짓할테니깐요. 과거를 회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의미있는 오늘을 보내실 수있는, 책 한권과 함께하는 가을을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넷교보문고 MD 기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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