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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 변화구 계보] 휘어지고 떨어지고…“어? 공이 춤추네”

石泉 2008. 9. 25. 12:26
[한국야구 변화구 계보] 휘어지고 떨어지고…“어? 공이 춤추네”

[JES 김성원]

일간스포츠 39년의 역사는 야구의 역사다. 그리고 그 야구는 새 구종, 변화구를 개발하는 투수와 이를 공략하려는 타자의 '도전과 응전'으로 씨줄·날줄이 꿰인 투쟁사다. 일간스포츠 야구팀은 한국야구를 풍미했던 변화구의 계보와 숨은 이야기를 찾아봤다. 여든을 훨씬 넘긴 나이에 현재도 정정한 김양중씨. 그는 1946년 제1회 청룡기의 스타였다. 광주 서중(현 광주일고) 출신으로 훗날 숙명의 라이벌로 불리게 되는 경남중(현 경남고)의 장태영씨와 함께 이 대회에 나가 연속 완투를 하며 철완을 과시했다. 지난해 겨울 제일화재 프로야구 대상식에도 어김없이 참석한 그에게 예전 에피소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 변화구? 그런게 어딨어. 그냥 힘과 힘의 싸움이야. 직구로 승부하는거야. "

야구인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커브 등의 변화구가 쉽게 볼 수 있는 구종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광환 히어로즈 감독은 " 주한 미군과 경기를 한 게 커브가 본격화된 계기 " 라고 말했다. 대한야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야구협회가 창설한 해는 1946년. 한국야구사에는 그 해 8월 11일 경성운동장(동대문야구장)에서 미8군 팀과 '조·미친선야구대회'가 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광환 감독은 " 해방 전까지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의 영향 아래 있었다. 당시 투수들은 직구 위주의 교과서적인 피칭을 했다. 반면 미군들은 다양한 변화구와 요즘 말로 하면 체인지 오브 페이스에 능했다. 미군들과 경기를 하며 변화구 구사와 투구의 완급 조절을 전수받았다 " 고 설명했다.

이충순 전 한화 투수코치는 " 50년대까지 투수들은 힘에 의존하는 야구를 했다. 60년대를 거치면서 직구, 커브가 기본 볼 배합으로 자리 잡았다 " 고 말했다. 당시 커브를 잘 던졌던 투수로는 1960년대 상업은행과 육군에서 활약했던 김설권을 꼽을 수 있다. 62년 상업은행 감독으로 김설권을 스카우트한 장태영은 " 당시 그의 커브는 한국 제일이라 할만 했다 " 고 평했다. 이광환 감독도 60년대 커브의 달인으로 김설권의 이름을 먼저 들었다.

다소 우직하다 싶은 이 직구의 싸움은 이른바 재일교포 선수들의 대거 등장으로 흐름이 바뀐다. 기업은행 에이스로 활약한 김성근 SK 감독은 시속 140km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강속구에 예리한 각도의 커브를 자랑했다.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출신 김호중도 위력적인 커브를 자랑했다. 당시에는 드롭, 또는 드롭커브로 불리는 구종이었다. 휘는 각도가 그리 크지 않은 대신 빠른 구종으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 했다.

슬라이더의 원조는 누구일까. 한국 야구에서 슬라이더의 원조로는 김영덕 전 한화 감독을 꼽을 수 있다. KBO가 펴낸 < 한국야구사 > 는 " 대한해운공사 소속 김영덕이 64년 처음으로 국내에 슬라이더성 구질을 선보였다 " 고 적고 있다. 그러나 김영덕 감독은 " 아마도 전 해인 63년에 언더핸드스로 투수 신용균이 국내에서 처음 슬라이더를 던졌을 것 " 이라고 말한다. 김영덕을 비롯한 재일교포 투수들의 다양한 변화구는 한국야구에 큰 충격이었다. 64년 김영덕은 255이닝 동안 자책점 9점만 내주며 방어율 0.32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초기에는 슬라이더보다 커브가 대세였다. 원년의 삼성 이선희, MBC 청룡 하기룡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이듬해 데뷔한 롯데 최동원은 한국 야구 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그리고 세계무대도 평정했던 그 커브로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김용수, 김건우 등이 등장할 무렵 슬라이더가 커브를 앞선다. 85년 데뷔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 투수가 된 선동열의 주무기가 바로 슬라이더였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새로운 구종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계열의 공이다. 해태 차동철의 주무기였던 'V직구'가 스플릿핑거드패스트볼(SF볼)이었다. 공을 손가락에 완전히 끼우는 포크볼보다 다소 얕게 잡아 '반포크볼'로 불리기도 했다. 해외전지훈련을 통해 인스트럭터로부터 짧게 짧게 배운 효과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광환 감독은 " 84년 미국 교육리그에 OB 베어스를 이끌고 참가했다. 이때 SF볼을 처음 배웠다 " 고 말했다. 이광환 감독은 " 스플리터 계열의 공이 등장하자 '낙차가 적지만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공이 더 유용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 고 설명했다.

90년대로 접어들면 체인지업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후 포크볼도 커다란 체격을 앞세운 선수들이 장착을 시작 했고, 요즘 국내 프로야구 투수들중 각 선발 로테이션마다 포크볼이 주무기인 선수들은 예외없이 포함돼 있다. 90년대 미국에서 나온 구종 중 하나인 컷패스트볼은 아직 국내에서 제대로 뿌린다는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커터는 사실 미국에서도 마리아노 리베라 정도를 제외하곤 특화된 선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이 치러진 미국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 일련의 일본인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왼손 타자에게 던지는 저 몸쪽 공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투심패스트볼이라는 설명에 일본 미디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 이론상, 인스트럭션상 일본에서도 있는 구종이지만 저 정도로 결정구를 뿌리는 투수들은 없다 " 고 말했다.

직구와 비슷한 속도로 체인지업의 낙폭보다 다소 낮은, 박찬호표 투심패스트볼의 활약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에서 받고, 배우고, 보기만 했던 한국야구가 박찬호라는 '야구유학생'을 더 큰 무대 미국에서 성공시켜 세계 무대에서 그들에게 한 수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도 좋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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