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그룹

내 몸을 내준다면

石泉 2010. 1. 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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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내 몸을 내준다면


지난해 존엄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에도 201일을 더 산 뒤, 1월 10일 이승을 떠났습니다. 2008년 2월 폐렴 증세로 입원해 폐 조직 검사를 받다가 식물인간이 됐던 분입니다. 사망 다음 날 실시된 부검의 결과는 한 달쯤 지나 나온다는데, 유족과 병원의 소송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지만 식물인간이 된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보다 더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도 그리 오래 살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김 할머니는 이름도 공개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고,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기간이 과연 삶이라고 할 수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생명은 참 오묘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이미 사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장례 준비를 마친 유족들이나 거센 논란을 벌여온 우리 사회는 당혹감과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도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시술과정에서 뇌경색이 돼 버려 2002년 11월부터 2004년 5월까지 19개월간 의식 없이, 말 한마디 없이 누워 있다가 가셨습니다.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며 병원에 항의하고 소송도 하라고 권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러지 않았습니다. 의료사고 여부도 알 수 없고, 그렇게 해서 이긴다 한들 망인이 살아 돌아올 리도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두 번 순서에 맞춰 중환자실에 들어가 면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면회를 하다가, 계속 중환자실에 계시게 해 달라고 병원 측에 간청하고 선물 주고 밥 사며 민원을 하다가 결국은 일반 병실로 모시고 나왔습니다. 이어 대부분의 사망자들이 거치는 경로 그대로 요양원으로 옮겼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에도 자기 호흡을 계속한 것은 김 할머니와 같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미 한 번 언급했지만, 임종하듯 면회를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나온 밤이면 누군가 붙잡고 상의하고 싶었고, 어디론가 긴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고심하던 그 무렵, “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계속하느냐”, “임철순 씨처럼 냉철한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나도 그런 일을 겪기 전에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에 강력 반대했고, 의식 없이 누워서 온갖 누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경멸/혐오/타기했지만 막상 내 문제가 되니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무렵, 8년 만에 깨어나자마자 “아무개 에미만 (병실에) 안 오더라”고 해서 맏며느리를 기겁하게 만들었다는 시아버지 이야기도 들었고, 9년이나 의식 없는 아버지를 간호했던 친구의 경험담도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여전히 입을 딱 벌린 채 때때로 하품을 하면서 의식 없이 누워 계시다가 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그리고 장례를 치른 이후 가족들에게 “내가 만약 그런 일을 당하거든 호흡기 떼어 버리고 절대로 연명치료 하지 말라”고 단호하고 씩씩하게 말해 두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도 존엄하고 가능한 한 아름다워야지 그게 대체 뭐야…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내 몸과 장기를 실험용이나 다른 환자 치료용으로 기증하는 문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고 말해 주더군요. 그의 생각을 요약하면, 한 사람의 몸은 그 집안의 공공재나 마찬가지라는 것, 지금까지 부모나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애쓴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내 몸을 가족들에게 내주어 나를 위해 애쓰고 서로 대화할 시간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말뜻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의식 없이 누워 있는 것은 절대 싫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슨 무슨 병도 참 많지만, 치매나 중풍만은 걸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런 병보다는 내가 죽는다는 걸 알 수 있고 삶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암에 걸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의식 없이 죽는 것은 싫습니다. 내 몸을 가족들에게 내주는 것도 그런 경우에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이해인 수녀가 최근 <희망은 깨어 있네>라는 시집을 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김점선에게’라는 시에서 그는 ‘장영희 김점선 이해인/셋이 다 암에 걸린 건/어쩌면 축복이라 말했던 점선//하늘나라에서도 나란히 한 반 하자더니/이제는 둘 다 떠나고/나만 남았네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문학자 장영희, 화가 김점선은 암으로 작년에 세상을 떠난 분들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책의 머리말에서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나 우선은 최선을 다해 투병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심정으로 작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를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소녀”라고 말했던 소설가 최인호 씨도 암 투병 중입니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해온 소설 ‘가족’은 35년 만에 지난해 10월 402회로 막을 내렸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투병 중인 최씨는 병세가 나빠진 게 아니라 회복 중이라니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를 보면서, 어차피 병으로 죽을 거라면 차라리 암에 걸려야지 결코 치매나 중풍에 걸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과 작별하고 가족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일이 아무런 의식 없이 이루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최근 성혜영의 <오후 2시의 박물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에 눈길이 가 몇 번이고 고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참 부러웠습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데 규칙 따위는 없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시간이 전하는 온기와 행위의 의미에 대해 섣불리 짐작하거나 쉽게 말하지 말자. 그 누구의 것이든 몇 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남은 자이며, 또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자가 아닌가. 내밀하고 고요한 자기 연민만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작별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년부터 한국일보 근무. 현재 주필. 시와 술과 유머를 사랑하고,
불의와 용렬을 미워하려 애쓰고 있음. 호는 淡硯(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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