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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의 확~끌리는 대중문화] 시청자 사로잡은 촌철살인 명대사 (포스코뉴스에서)

石泉 2012. 6. 29. 13:33

[이승재의 확~끌리는 대중문화] 시청자 사로잡은 촌철살인 명대사

“정치란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거지.” “큰 마차가 먼 길을 가다 보면 깔려 죽는 벌레도 있기 마련입니다….”

아, 얼마나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란 말인가. 듣기엔 불편하지만 결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이상은 요즘 시청자들 사이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SBS TV 월화드라마 <추적자>의 명대사. 지난 5월 28일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박근형·손현주·김상중·김성령·강신일 등 연기파 배우들의 소름이 돋을 만한 명연기와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들로 세간의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백홍석(손현주)이 자신을 향한 복수를 꿈꾸자 강동윤(김상중)은 냉정한 시선으로 이런 ‘충고’를 날린다.

“복수는 내가 강해졌을 때 아니면 상대가 약해졌을 때 하는 거야.” “용서는 힘 있는 사람만이 하는 거야. 힘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건 포기뿐이라고! 억울하고 화도 나겠지만 좀 더 일찍 포기하면 작은 것이라도 지킬 수 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아, 찢어지게 가난한 과거를 딛고 이젠 대통령에 도전하게 된 강동윤은 세상을 ‘힘과 권력의 논리’로만 바라보는 냉혈동물 같은 존재.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의 말 같은 건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만을 기억하지요”라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세속적이지만 분명 현실적인 대사의 힘에 구구절절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직 세상을 승부와 승패의 관점에서만 보는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짧고도 서늘한 대사를 내뱉는다.

“누군가 꿈을 이루면, 누군가는 꿈을 잃는 법이야.”

하지만 걷는 놈 위엔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는 법. 피도 눈물도 없는 강동윤이 ‘맹수’와 같은 존재라면, 이런 강동윤을 놀라운 권모술수로 옥죄어 들어가는 서 회장(박근형)은 음흉하고 저주스러운 ‘구렁이’ 같은 존재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위해 걸림돌을 제거해달라고 요구하는 강동윤에게 서 회장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기괴하고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이런 대사를 던진다.

“동윤아, 내가 민성이만 할 때 명절 때마다 동네에서 소싸움을 했다 아이가. 거서(거기서) 몇 년을 내리 이긴 황소가 있었다. 글마가(그놈이) 우째(어떻게) 죽었는지 아나? 모기한테 물려 죽었다! 아, 지(자기)보다 두 배나 큰 놈을 넙죽넙죽 넘기던 놈이 지 눈에도 안 보이는 모기한테 물려 죽었다 아이가. 껄껄껄껄. 아, 와, 내한테(나한테) 모기를 잡아 달라 이 말이가? 근데 동윤아, 모기보다 황소를 없애는 기(것이) 내한텐(나한텐) 더 안 좋겠나….”

그렇다! 자신의 자리를 감히 넘보는 사위를 돕기보다는 차라리 제거하고 말겠다는 의중이 담긴 섬뜩한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서 회장은 기가 막힌 비유가 담긴 이런 대사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나기가 어디 있노? 곧 날이 갤 끼다.”

진정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하루 종일 내리는 소나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악당들에겐 하루 종일 소나기가 내리는 그날이 오기를!

동아일보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