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야기

저승에서 돌려받은 금메달

石泉 2008. 7. 17. 10:03
[하남길 교수의 올림픽 이야기] (6) 저승에서 돌려받은 금메달
2008-07-15 10:04
아마추어 규정 엄격…짐 소프 金 2개 빼앗겨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부터 아마추어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amateur)란 말은 원래 진정한 신사, 즉 젠틀맨(gentleman)을 상징하는 용어로 상류계층을 일컫는 대명사였다. 상류계층인 아마추어들은 스포츠를 순수한 그들만의 여가문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올림픽의 아마추어 규정은 순수하게 취미로 스포츠에 참가하는 상류층을 위한 것이었다.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 수영선수 보이레파이레(F. Beaurepaire)는 수영지도자 생활을 한 경력으로 인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더 역사적인 것은 소위 '짐 소프 사건'이다. 인디언 혈통의 소프(J.F. Thorpe)는 스톡홀름올림픽 5종과 10종 경기에서 2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의 기록은 1932년 LA올림픽까지 누구도 깨지 못할 정도로 탁월했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라며 찬사를 보냈고, 미국 대통령 태프트(W.H. Taft)도 "최고의 미국 시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소프는 인디언 혈통으로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지만 미식축구, 야구, 농구, 육상 등에서 만능선수의 자질을 보였고, 올림픽 우승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질 듯 했다. 그러나 금메달을 딴 이듬해부터 그의 불행은 다시 시작됐다.

 1913년 1월 미국 '월스터텔레그램(Worcester Telegram)'의 존슨 기자는 소프가 올림픽에 참가하기 이전에 야구경기에 출전하여 돈을 번 일이 있다는 과거를 기사화했다.

 미국운동경기연합(AAU)은 소프가 1909~1910시즌 노스캐롤라이나 마이너리그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소프의 금메달 2개를 돌려받아 IOC에 반환했다.

 12세에 어머니를 잃고 15세 때에는 아버지마저 잃은 소프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고, 마이너리그 야구팀에서 주급 25달러 정도를 받은 것이 아마추어 규정에 저촉되는 것인지조차 몰랐다.

 메달을 빼앗긴 그는 미식축구와 야구 선수, 할리우드의 엑스트라 배우, 경비원 등을 전전하며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32년 LA올림픽 때는 입장료가 없어서 좋아하는 육상경기의 관전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는 평생을 통해 자신이 땄던 금메달을 돌려받기를 희망했다. 황혼기를 맞아 더욱 초라한 생활을 하던 그는 자신이 딴 금메달을 돌려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간직한 채 1953년 3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포츠의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골프, 테니스, 축구 스타들이 올림픽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자 IOC에서 아마추어 규정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IOC는 1974년 올림픽 헌장에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삭제하게 된다.

 1975년 미국 포드(G. Ford) 대통령은 상황이 달라진 것을 알고 킬라닌 IOC 위원장에게 소프의 복권을 호소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2년 10월 IOC집행위원회는 소프의 복권을 결의했고, 소프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난 1983년 소프의 금메달은 그의 자녀들을 통해 그의 영전에 바쳐졌다.

 소프는 저승에서 금메달을 찾은 셈이었다. 펜실베니아 그의 고향은 '짐 소프 타운'이라는 명칭이 붙여졌고, 그의 큰 기념비에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고 새겨져 있다. 영웅은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한다는 말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올림픽 스토리이다.

 < hng5713@gnu.ac.kr 경상대학교 교수>

'마라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인이여 英 왕을 무시하라  (0) 2008.07.17
불운의 마라토너 도란도  (0) 2008.07.17
콜레마이넨과 손기정의 눈물  (0) 2008.07.17
0.3초의 직관력  (0) 2008.06.12
언덕달리기  (0) 2008.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