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야기

불운의 마라토너 도란도

石泉 2008. 7. 17. 10:04
[하남길 교수의 올림픽 이야기] (5) 불운의 마라토너 도란도
2008-07-13 10:32
트랙 반바퀴 남기고 '날아간 金'
 
 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마라톤이다. 마라톤의 기원이 페르시아 전쟁사에 얽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는 제2차 그리스 정벌을 위해 그리스 마라톤(Marathon) 벌판에 진을 쳤고, 아테네는 사신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통해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한다. 어쩔 수 없이 아테네는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올림피아 4두마차 경주 우승자 밀티아데스(Miltiades)를 앞세우고 9일 동안 페르시아와 맞선 전투에서 그리스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스파르타로 구원을 청하러 갔던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달려 승전보를 전한 뒤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달린 것을 기념하여 장거리 경주가 생겨났고, 그 경주는 전쟁을 했던 평야의 이름을 따서 마라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페이디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하여 어떤 길을 통과하며 달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의 거리로 보면 약 22마일(36.749km) 정도가 된다. 제1회 올림픽이 결정되자 프랑스의 브레알(Michel Breal)은 마라톤의 채택을 제의하였고, 그 제의가 받아들여져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 올림픽 판아테나이 스타디움까지 약 40km 코스에서 첫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는 40.26km, 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40km 코스에서 마라톤 경기가 실시되었다.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도 전 대회의 관례에 따라 약 25마일(40.23km) 코스에서 실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발 지점이 윈저 성(Windsor Castle)으로 결정됨에 따라 거리가 26마일(41.84km)로 늘어났고, 거기에 메리 공주가 스타트라인을 윈저성 광장의 왕립 유치원 창문 앞에 긋도록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마라톤 실제 거리는 26마일385야드(42.195km)로 늘어나게 되었다.

 메리 공주의 응석으로 조금 늘어난 마라톤의 거리는 런던 올림픽 우승의 기회를 잡은 도란도 피에트리(Dorando Pietri)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고온 다습한 날씨에 레이스를 펼친 이탈리아 선수 도란도는 결승점을 바라보며 마지막 트랙 반 바퀴를 도는 동안에 다섯 번이나 넘어지며 비틀거리자 몇몇 임원들이 부축해 주는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2위였던 미국의 헤이즈(Johnnny Hayes)가 항의하자 도란도 피에트리는 임원들이 반주(伴走)를 해 준 것으로 인정되어 실격처리 되고, 금메달은 헤이즈의 목에 걸리게 되었다. 만약 마라톤 거리가 385야드만 더 늘어나지 않았더라도 우승자는 도란도가 되었을 터였다.

 런던 올림픽 이후에도 마라톤 코스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았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대회 40.2km, 1920년 제7회 안트워프대회 때는 42.75km이었다. 그러다가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에서 마라톤 거리를 42.195km로 확정하여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관례적으로 25마일 거리였던 것이 윈저성과 메인스타디움의 거리, 그리고 메리 공주의 응석으로 더 늘어나게 된 것이며, 메리 공주로 인해 도란도의 금메달은 날아 가버린 셈이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법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주어진 조건에서 이겼어야만 했다.

 < hng5713@gnu.ac.kr 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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