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길 교수의 올림픽 이야기] ③ 1896년의 올림픽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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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 최고의 운동경기단체였던 미국의 뉴욕애슬레틱클럽(NYAC: The New York Athletic Club)과 보스턴 운동경기협회(BAA: The Boston Athletic Association)에서는 그리스의 초청에 조소를 보내며 불응했고, 미국 대표선수는 자발적으로 출전한 대학생이 주를 이뤘다. 여자 선수도 없었다. 제1회 아테네올림픽은 여성의 참여가 금지된 남성만의 잔치였다. 13개국 311명(선수 245명)의 선수단은 모두 남성이었다. 쿠베르탱은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의 역할은 시상식에서 월계관을 전달하는 것 정도만 생각했다. 여성 참가가 허용된 제2회 파리올림픽도 선수 1077명 중 여자는 불과 12명이었다. 육상경기 방식도 이채로웠다. 크라우칭 스타트를 하는 단거리 선수를 찾기는 어려웠다. 육상 트랙 경기에서 운동장을 도는 방식도 오늘날과 반대인 우회전 달리기였다. 당시 판아테나이 경기장은 고대 그리스의 스타디온(stadion)을 모방하여 설계되었고, 트랙은 333m였다. 직선 코스는 긴 반면 곡선주로는 짧고 급하여 헤어핀 커브(hairpin curb)라고 불렸다. 당시에 왜 트랙을 우회전 방식으로 채택했는 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영국 경마 경주방식을 따랐다는 것이 통설이다. 1864년 3월 세계 최초로 열린 영국 옥스브리지 육상경기에서도 우회전 방식이었다. 우회전은 1912년 창설된 국제육상경기연맹에서 왼쪽(lefthande inside)으로 돌아 달리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는 수많은 남녀 선수들이 참가한다. 1896년의 그 초라한 올림픽이 이렇게 거대한 잔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생명력이 있는 것은 진화한다. 1896년의 축제는 초라했으나 생명력이 있었고, 올림픽이 지금과 같은 거대한 축제로 변한 것은 생명력을 상징하는 스포츠의 문화적 진화 결과이다. < hng5713@gnu.ac.kr 경상대학교 사범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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