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대안과 모색 <11> 귀농 전도사' 이병철 前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

石泉 2008. 8. 19. 09:55
대안과 모색 <11> 귀농 전도사' 이병철 前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
기업형 농촌이라고요? 가족형 유기농만이 대안입니다
농촌을 '쌀공장'으로 보는 정부태도 위험
텃밭만들기 등 도시농업운동도 절실
'물질풍요의 모순' 각성없인 귀농 못해
식량위기, 생태적 농촌 되살려 대비해야

 
  '귀농 전도사'이병철 전 귀농운동본부 이사장은 귀농은 단순히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숲안마을. '귀농 전도사' 이병철 전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이 4년 전 둥지를 튼 곳이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순전히 마을 이름 때문이다. 자연이 배태한 '숲안'과 사람이 사는 '마을'이 함께하는 따뜻한 공간, 생태적 삶터란 느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귀농을 부추겼지만 정작 스스로는 돌아가지 못했던 그의 오랜 방황(?)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는 지금 숲안마을에서 햇살과 바람, 벼 등 온갖 곡식과 주위의 뭇 생명을 모시고 산다. 이현주 목사가 지었다는 '숲마루재'란 당호를 가진 그의 거처엔 살림의 기운이 넘친다. 서재 벽엔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쓴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이란 글이 걸려, 고졸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화를 더욱 훈훈하게 했다. 하늘과 땅을 공경하고 만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라 사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함을 이야기한 공자의 안분(安分)의 말씀이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성인의 말씀을 경구 삼아 스스로를 낮추며 제대로 된 농사를 짓기 위해 날마다 정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치열하게 펼쳐오던 귀농운동의 일선에서 물러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사는 재미가 어떤지요.

▶농사랄 것도 없지요, 텃밭 수준입니다. 제 식구와 저를 찾아오는 이들이 먹을 만큼만 짓고 있습니다. '숲안'이란 이름에 혹해 9년 전부터 이곳에 들락거리다가 4년 전에 집을 짓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지난 3월엔 귀농운동본부 이사장직을 물러났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개인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운동'에 대해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일보다는 제 스스로의 성찰, 내면적 변화에 관심이 머물러 있습니다.

-사회를 변혁하는 일에 앞서 개인적 성찰, 자각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개인의 존재에 대한 자각 없이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은 분리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내가 투영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내가 먼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것은 세상에 요구만하고 비판만 하지 정작 자신의 변화는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건강해야 세상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부터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귀농운동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클 것 같습니다. 귀농운동은 자기 성찰 없이는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단순히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귀농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입니다. 경제적인 잣대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귀농입니다. 토지와 경험을 가진 농민들조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귀농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귀농은 행복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자연과 흙에서 분리된 도시적 삶은 근원적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도시인의 삶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확인할 때 귀농이 대안적 삶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돈벌이보다, 편리함과 풍족함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귀농의 첫 걸음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귀농은 생태적 삶에 대한 근원적 자각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근본적인 자기성찰은 바로 생태적 각성입니다. 농촌이 병들고 황폐해진 것은 공업 중심, 도시 중심의 현대문명과 가치관 때문입니다. 현대문명은 필연적으로 생명의 근거를 파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농업을 되살림으로써 생태순환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농적(農的) 문명'을 일구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는 불편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흙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선 내면의 평화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존재론적 각성을 통해 정말 행복한 삶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란 것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출범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귀농운동본부는 IMF 직전이던 1996년에 출범했습니다. 산업화에 밀려난 우리 농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세상의 뿌리인 농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제2의 브나로드운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지요. 200만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돌아가게 하자, 병든 땅을 살리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원대한 꿈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한편으로는 도시의 젊은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귀농운동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음의 에너지와 열기를 오로지 돈 버는 일에 투자하는 것은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과거에는 젊은이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상과 꿈을 좇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설적으로 87년 우리가 이뤄낸 민주화가 그것을 잃어버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귀농운동본부가 우리 사회의 귀농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그동안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귀농자의 정착 확률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12년간 3500여 명이 저희 귀농학교를 수료했고, 그 중 600~700명이 농촌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숫자는 많지 않지만 그들의 귀농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큽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90% 이상이 땅과 더불어 버텨냅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삶의 가치를 전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반 귀농의 경우 70% 가량이 다시 도시로 회귀합니다.

-귀농운동은 도시농업운동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는 주요사업의 하나로 도시농업운동을 펼쳤습니다. '도시를 경작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지요. 도시농업운동은 전환기적 단계로, 도시라는 삶의 자리에서 농적 체험을 해보자는 것이죠. 생태�생명과의 연결고리를 마련한다는 차원입니다. 러시아에선 다차,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텃밭 가꾸기를 통해 도시인들이 경작의 기회를 갖습니다. 흙을 만지면서 자연에 대한 본능을 회복시킵니다. 흙이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본능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옥상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라도 작은 생명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마토 한 포기, 상추 한 닢에서도 자연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게 생태적 감각, 생태적 지혜를 키우는 길입니다. 시민단체나 직장 단위에서도 '내 땅 한 평 가꾸기' 운동이 절실합니다.

-귀농학교 교육은 농사 기술보다도 귀농의 당위성에 대해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귀농하는가, 무엇 때문에 귀농이 필요한가를 자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교육의 주안점을 둡니다. 귀농 희망자에게 왜 귀농하려고 하느냐, 귀농하지 않을 수 없는 열 가지 이상의 이유를 찾지 않고서는 귀농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길 합니다. 귀농은 대안적 삶의 추구입니다. 대안은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아닙니다. 대증요법으로서는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어떤 운동이든 간에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명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없이는 우리 앞에 펼쳐진 위기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귀농운동의 절실함 이면에는 문명사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인간의 탐욕이 전 지구적 생태 위기를 불러왔다고 보면 될까요.

▶분명 지구 차원의 문명 위기입니다. 그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위기이죠. 지금까지 지구는 다섯 차례 대멸종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제6의 멸종은 인간이란 한 종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종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사실이 이전의 대멸종과 다릅니다. 과거에는 외부적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위기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위기를 인간이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더 편리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인간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질수록 부족하기만 한 상태, 무한욕망이 인간의 가치를 왜곡시켜 놓은 겁니다. 이제 위기를 깨닫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대한 고민하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

-씀씀이를 줄이는 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 개인적인 각성이 절실한데요.

▶개인에서 시작해 집단적으로, 모든 인류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적게 소유하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적게 소모할 때 이웃이 살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법입니다. 적게 소유할수록 삶이 풍요해집니다. 물질적 풍요를 놓을 때 자연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경쟁체제 아래서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풍요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물질을 넘어서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행복해지는 방법입니다.

-회색 도시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귀농은 꿈이기도 합니다. 귀농에 대해서 전망해 본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농업경제연구소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0% 이상이 기회가 주어지면 농촌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도시의 삶이 절박하다는 것이지요. 넉넉한 전원생활, 소비적인 전원생활을 염두에 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요. 도시에서 피폐해진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서 노후에 전원생활을 하려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들도 농촌인구 유입을 위해 귀농정책을 활발하게 펼칩니다. 앞으로 2~3년 안에 대규모적인 귀농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류사회에 닥친 환경과 생태적 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위기가 각성의 계기가 되는 겁니다.

-식량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농촌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가 되고요.

▶최근 들어 세계적인 식량파동과 에너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식량위기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식량위기가 에너지 위기보다 더 먼저 올 것입니다. 기후온난화는 식량위기를 필연적으로 부릅니다. 앞으로 4~5년 안에 전 지구적 식량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일반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도 않고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 북한의 식량위기가 내일은 우리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기아사태에 직면하면 곳곳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생태적 농업의 회복을 위해서는 공동체적 작업이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고요.

▶귀농을 통한 생태적 공동체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집 짓기, 옷 만들기, 농사까지 모든 생활이 생태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곳곳에서 생태 농업, 생태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북 무주 진도리에 허병섭 목사가 들어가 대안농촌을 일구고 있고, 전북 남원 산내면에서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100여 가구가 작은학교와 함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충남 홍성에는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오랜 역사 속에서 모범적인 대안농촌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충북 괴산, 경북 상주, 전북 진안 등 여러 곳에서 꾸준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경험의 일천, 농업생산의 자립적 기반을 방해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귀농현장의 대안농업으로 유기소농이 바람직하겠지요. 유럽에선 광우병사태 이후 유기소농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농촌을 기업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공한 기업 CEO를 농촌에 보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까지 합니다. 농촌을 '쌀 공장'으로 보는 천박한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과거 YS정권 때 농촌에 엄청난 돈을 들여 농업의 경쟁력 높이기를 도모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몇몇 특정인들의 배나 불리고 농촌의 건강한 자생력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해서는 가족농 중심의 유기농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유기소농은 비단 곡물 생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축산도 유기농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폐해가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동물사료를 주는 공장식 축산은 이미 농업이 아닙니다. 유기농은 생태적 순환이 가능할 때 가능합니다.

-모든 변화의 근본에는 생명성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생명문화의 회복을 위해 한 말씀해 주시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발 딛고 숨 쉬고 생활하는 천지만물은 우주와 자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것과 내가 대하는 것에 대한 감사,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받아 모시는 나의 소중함 또한 자각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가 소중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세상과 존재를, 생명을 함부로 하는 데서 문명의 위기가 온 것 아닙니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오히려 황폐해졌습니다. 고마움과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덜 소비하고 덜 파괴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본질을 외면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미래와 내세의 평화보다 현실 속의 작은 평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담을 마친 그는 사흘간 지리산에서 열리는 생명평화결사 여름모임에 참석하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생명평화결사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개인적으로 15~20명의 도반과 함께 물처럼생명평화학교를 숲마루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연다. 여기에서는 책 읽기, 기도하기, 미워하지 않기 등 밝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애쓴다. 모든 미움을 내려놓고 희망과 구원을 기도한다. 마음의 평화를 짓기 위한 그의 간절한 심중은 그의 시 '남은 날을 위한 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이신 이여 / 제가 보는 모든 것에서 당신의 사랑과 축복을 보게 하소서 / 저를 향한 삿대질에서도 당신의 그 사랑을 읽고 감사하게 하소서 // 제가 듣는 모든 것에서 당신의 사랑과 축복을 듣게 하소서 / 저를 향한 비난 속에서도 당신의 그 음성을 듣고 감사하게 하소서 // 제가 대하는 모든 것에서 당신의 사랑과 축복을 느끼게 하소서 / 저를 향한 돌팔매질 속에서도 당신의 그 손길을 느끼고 감사하게 하소서 // 사랑이신 이여 / 아직은 분별과 간택에 붙잡혀 / 날마다 생각으로, 말로, 행위로, 짓는 허물이 커서 / 참회와 용서를 청하지 않을 수 없으나 / 제게 남은 날들의 마지막 기도는 /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 / 이 두 마디뿐이게 하소서 // 사랑이신 이여 / 그리하여 지난 삶에서 제가 기억했던 그 숱한 말들을 다 잊게 하시고 / 다만 고맙고 사랑한다는 그 말만을 기억하게 하소서 // 사랑이신 이여 / 제게 남은 날들이 / 제가 보는 모든 것을 통하여 / 제가 듣는 모든 것을 통하여 / 제가 만나는 모든 존재들을 통하여 / 저도 당신의 그 옹근 사랑과 축복을 함께 나누는 자이게 하소서 // 사랑이신 이여 / 저를 빚으시고 제 안에 계시며 / 저를 통해 드러나시는 이여 /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장병윤 수석논설위원 byjang@kookje.co.kr

  입력: 2008.08.18 20:03 / 수정: 2008.08.1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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