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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안촌마을에 살고 있는 한 전원주택 주민이 배추 모종을 심기 위해 밭을 일구고 있다. 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 | |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빚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불교에서도 흙과 물 불 바람이 사람을 이루었다고 하지요。 신의 존재나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이 나고 죽는 이 기본적인 섭리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땅에는 사람의 회귀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정신의학자는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땅에서 떨어져 고층에서 생활하면서 비롯됐다고도 합니다。
요즘 매캐한 공기와 뜨거운 아스팔트、 꽉 닫힌 아파트를 벗어나 흙으로 돌아가려는 도시인들이 많습니다。 주말마다 근교에서 농사를 짓거나 출퇴근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아예 집을 시골로 옮긴 사람도 적지않지요。
이런 사람들의 아지트 중 한 곳이 경남 밀양입니다。 부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도 안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햇볕과 자연이 충만한 소도시。 그 중에서도 금오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삼랑진 행곡리 안촌마을은 전체 40여 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시골 회귀를 단행한 도시인들입니다。 은퇴한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교수 사업가。 직업과 계층도 다양합니다。
각자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은 다르겠지만 근본 목적은 아마 같을겁니다。 흙내음에 대한 갈망 아닐까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시골생활。
이들은 무엇을 버리고 여기에 왔고 이곳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도시인의 전원생활。 그 모습을 24시간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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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고추수확을 하고 있는 천상렬 이곡지 부부. 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 | |
처서를 넘긴 아침 공기는 이제 꽤 싸늘하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을까. 거인의 입안처럼 새까맣기만 하던 세상이 조금씩 제 형체를 드러냈다. 산도 들도 모두 잠을 깨는 시간. 짹짹짹짹~. 자연 알람이 새벽을 알린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행곡리 안촌마을. 산 아래 하부댐(안태호)에서 8부 능선에 있는 상부댐(천태호)으로 물을 끌어올렸다 내렸다 하며 전기를 만드는 양수발전소가 있는 아늑한 시골마을이다.
천상렬(65) 이곡지(여·61) 부부가 살고 있는 나무집도 막 잠에서 깨어났다. 부부의 발걸음은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새벽잠이 없는 나이가 된 탓도 있지만 시골생활의 아침은 정말 바쁘다. 일어나자마자 마당 텃밭으로 나가는 부인 이 씨. 체크무늬 남방에 몸뻬바지,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은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아낙이다.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조금 늦었어요." 전날 오후 형태를 잡아놓은 밭이랑 위에 쪼그리고 앉은 그녀는 호미를 들고 30~35㎝ 간격으로 구멍을 파서 모종을 하나씩 하나씩 정성스럽게 옮겨심었다. 밭일은 해 뜨기 전 2시간, 해 진 후 2시간이 적기이다. 한낮에는 햇살이 너무 따가워 일을 할 수가 없다. 이 씨의 손이 더 바빠졌다. "50여 포기만 있으면 우리 먹는 것은 충분한데 주변에 좀 주고 하려면 120포기는 돼야 됩니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일교차가 커서 여기서 자란 배추가 참 맛이 좋아요." 흰 고무신 차림의 남편은 밭일을 아내에게 맡기고 천태호 주변으로 등산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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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을 이용해 스케치 연습을 하고 있는 조은순 씨.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는 붉은 고추들 차지다. | |
"이건 파예요. 봄에 심으면 겨우내 빼먹을 수 있어요. 조금 있으면 땅콩이 열리겠네. 잘못하면 '서생원' 좋은 일 다 시키는데. 도라지꽃 보셨어요. 참 예쁘죠. 어디서 씨가 날아왔는지 냉이가 저절로 자라요." 생선비린내가 난다는 어성초에서부터 돈나물 더덕 민들레 케일 오이…. 정말 없는 게 없다. 풋사과를 하나 따서 베어 물고 무화과 열매를 또 하나 따서 맛을 본다. "아직 덜 익었네. 시골 사람들은 먹을 여가가 없어서 그렇지 찾아보면 천지가 먹을거리예요. 벌이나 새가 단맛을 알고 먼저 달려드는데 같이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없지 뭐." 이날 부부의 아침 상에 오른 가지나물 호박나물 산초장아찌 매실장아찌 고추무침 김치 근대국은 모두 이 밭에서 난 것이다. 웽웽 울어대던 모기가 기어이 팔꿈치를 꽉 문다. "소금을 발라서 문질러봐요. 그럼 안 간지러워. 시골에 살면 시골 나름대로의 생활방법을 터득하게 돼요."
따가운 햇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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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집을 지은 김실곤(50) 조은순(여·51) 부부. 초등학교 교사인 이들은 장성한 두 아들을 부산에 두고 부부만 이곳으로 이사왔다. "처음엔 남편한테만 들어가라 했죠. 근데 어느 가을날 이 마을 은행잎이 너무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광경을 보고는 나도 같이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자동차로 1시간 이상 거리인 출퇴근길이 멀고 기름값도 많이 들지만 전원생활이 주는 만족감에 그 모든 불편을 잊었다. "너무 너무 좋아요." 한낮의 햇살 속으로 조 씨의 웃음이 번졌다.
남들에게는 양우석(18) 우성(17) 형제의 시골생활도 신기하기만 하다. 형제는 20리(8㎞) 거리에 있는 삼랑진역 근처 삼랑진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에 재학중이다. 시골 이사 이후 한참은 부산에서 다니던 학교로 장거리 통학을 했으나 1년전 아예 이곳으로 전학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이나 과외로 바쁠 시간이지만 형제는 오후 5시께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각자 자습을 하고 호수 근처에서 운동을 한다. 몇㎞ 정도 걷는 것은 이제 예사가 됐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형제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난이다. 이 모든 게 아버지 양문철(47) 씨의 남다른 교육철학 덕분이다. "도시에서만 자라면 아이들의 사고력이 죽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기 바빠 창의력이나 감수성이 자랄 틈이 없죠.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공부는 어디 가든 자기 하기 나름이니까." PC게임이나 오락은 이들 형제에게 그림의 떡이다. 인터넷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린 데다 집에는 아예 깔려있지도 않다. "하도 안하다 보니까 이제 하고 싶지도 않아요. 등하교하는 게 쬐금 힘들지만 견딜만 한데요."
안촌마을 전원주택 중에서도 제일 구석에 자리잡은 집은 손창대(56) 우순애(여·55) 씨 부부의 거처이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돈도 웬만큼 벌었지만 몸이 망가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손 씨. "병원에 가서 물어보면 표나게 아픈 데는 없는데 늘 시름시름. 여기 와서는 그런 증상이 싹 없어졌습니다." 원래는 천 교장네 근처에 집을 지었다가 그것도 번화가라서 싫다며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렁이나 독사도 슝슝 지나다니는 골짜기이다. "나이 들어 시골에 들어가 살면 재산을 불리는 데는 그만큼 손해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집을 지을 당시보다 이 지역 땅값이 많이 오른 데다 무엇보다 건강과 화목이라는 복을 얻었잖습니까."
그리고 다시 저녁
저녁밥때가 되자 안촌 주민들이 하나둘 천 교장네로 모여들었다. 윗집 교수댁, 손 사장 내외, 그리고 이 마을에서 손님 까다롭게 골라 받기로 유명한 펜션집 '윤사월'과 '펜션사계'의 주인도 함께했다. 이들 역시 부산생활을 접고 들어와 반쯤 시골사람이 된 이웃이다.
삼겹살과 부침개가 추가된 것 말고는 아침상이나 저녁상이나 큰 차이 없이 소박하다. 대신 화려한 대화의 꽃이 피었다. 수확한 고추가 각 집에 얼마나 되는지. 올 추석 햅쌀밥은 어느 집에서 얻은 쌀로 할지. 배추 모종을 어떻게 심는 게 좋은지. 거름은 무엇으로 할지. 대화의 주제는 온통 농사일이다. "씨 뿌린 곳에서 싹이 쏙 하고 올라오는 거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귀여울 수가 없어요. 그 맛에 힘들다는 생각도 잊는 것 같아요." 봄에는 고사리나물을 뜯으러 가고, 가을에는 밤 주으러 가고, 4일과 9일 장날에는 읍내에 나가 국수 사먹고, 잠시 농사일을 쉬는 날엔 LP판과 영화CD로 가득한 천 교장네 별장 '소리방'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이 모든 사소한 일상도 고된 농사일을 잊게 하는 청량제이다.
천 씨는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오던 때를 떠올렸다. "친구들은 저보고 2년도 못버틸 것이라고 했죠. 저도 처음에 '아, 이 밤을 어떻게 보낼꼬'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빨리 해가 졌으면 좋겠어요. 밤이 더 좋아요." 변화무쌍하면서도 한없이 넉넉한 대자연의 품에는 애초부터 내것과 네것을 따지는 계산이나 생활의 따분함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 전원생활 성공하려면
- 출발은 소박하게 … '촌사람' 될 각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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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촌마을 주민 손창대(오른쪽) 씨가 마실 나온 천상렬 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 |
초기 투자를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처음부터 집을 크게 짓거나 텃밭을 넓히지 않는게 좋다. 시골은 투자한 돈을 금방 회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실패할 경우 처분이 힘들어 오히려 전원주택이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주거가 주 목적이 아니라면 집은 15평 안팎, 황토방은 6~7평 규모가 적당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텃밭도 300평 미만을 권하는 이들이 많았다.
민간업자가 조성한 전원주택 단지는 주변 환경을 꼼꼼하게 체크하라. 위치는 기존 마을이나 그 주변이 좋다. 이미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본 결과 생활에 적합하다는 검증이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민간업자의 전원주택단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임의로 조성한 곳이 많다. 따라서 홍수 등 각종 재해 발생 시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아무리 전원주택이라도 도시에 있는 본거지와의 거리가 2시간 이상이면 곤란하다. 주말에만 오갈 경우는 물론, 은퇴 후 아예 시골에 정착할 계획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완전히 이주를 하기 전 1~2년간 준비기간을 거치게 되는데 집이 너무 먼 곳에 있으면 결국 안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1시간~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시골생활은 그저 낭만이 아니다. 잔디 심고 드레스 입고 고기 구워먹으려고 시골생활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농작물을 심고 기르는 작업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100% 시골사람이 돼 이런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시골생활이 가능하다.
병원 응급실과 금융기관이 가까운지 살펴야. 아무리 전원생활이라 해도 응급상황이 생길 수 있다. 자동차로 10~20분 내에 병원과 금융기관이 있어야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불편이 없다.
현지인의 입장 배려하자. 현지 주민들 시각에서는 도시인의 전원생활이 마뜩찮게 보일 수 있다. 실제 이들이 느끼는 위화감도 크다. 토박이 주민들과의 원만한 관계설정도 전원생활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