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

왜 프랑스인은 호주사람을 미워하는가

石泉 2008. 11. 7. 12:43

왜 프랑스인은 호주사람을 미워하는가
박일원 2008-11-06 07:22:45 조회수: 571 추천:2
 

포도원 기행-열한 번째 이야기

 

 

왜 프랑스인들은 호주사람을 미워하는가? 켐벨 마티슨이 쓴 책의 타이틀입니다. 켐벨 마티슨은 호주의 와인 전문가이자 작가로 주로 와인에 대한 책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호주 와인이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그동안 급격히 성장해 온 관계로 이제는 프랑스 와인과 어깨를 견 줄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서 이제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들의 와인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켕기는 게 있는지 세계 와인업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가 한 말 “세상에 어떤 나라가 단돈 8달러로 호주와인과 같이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맛이 좀 단순하고, 과일향이 많이 나며 와인에 영혼이 좀 덜 담긴 게 흠이라, 앞으로 10년 안에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을 인용해가며 호주와인이 질적인 면에서도 이제 프랑스 와인 따라잡기에 온힘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호주와인이 그동안 아무리 큰 성장을 했다 하더라도 프랑스 와인을 의식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과거에 호주가 영국이 아닌 프랑스의 식민지로 출발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프랑스 보르도나 부르고뉴 지방의 질 좋은 포도묘목들이 대량으로 호주에 들어올 수 있었을 거고 거기에 덧붙여 숨겨진 와인 제조 기술을 지닌 와인주조가도 일찌감치 들어와 자리 잡고 앉아 호주의 와인 산업은 지금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지 않았을까요.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아서 필립(Arthur Phillip) 선장이 이끄는 11척의 배가 죄수들을 싣고 긴 항해 끝에 시드니 보타니 만에 도착한 것은 1788년 1월 18일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후 정확히 8일째 되던 날인 1월 26일 프랑스 라페루우즈 백작이 이끄는 두 척의 배도 보타니 만에 도착하지요. 그들은 루이 16세의 특명을 받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대탐험에 나서 시베리아와 미국, 한국, 일본의 해역을 거쳐 출항 2년 6개월 만에 호주 땅에 도착합니다. 필립 선장이 영국을 떠난 지 8개월 만에 도착한 반면에 라페루즈 백작은 여러 나라 해역을 탐사하고 오느라 시간이 더 걸렸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라페루즈 백작과 그의 부관들, 흥분된 마음으로 육지를 바라보니 이미 보타니 만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이 갈매기와 함께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아서 필립은 라페루우즈 백작의 배가 그날 도착할 거라는 소식을 미리 듣고서 서둘러 NSW 주 전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이미 공표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주일 남짓한 긴박한 상황이 호주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아 그 후로 호주는 영국의 속국이 되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호주 땅을 영국에게 양보해야 했던 라페루우즈 백작과 그 선단은 그 후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영국 측으로부터 식량이라도 얻으려고 했으나 자기들의 몫도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래도 그들은 서부호주를 탐험하고 프랑스로 귀국 하던 중 풍랑을 만나 바다에 묻히고 이런 사고자체도 프랑스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렇게 됨으로써 안정적인 기후와 풍부하고 강렬한 일조량에 와인 생산에 적합한 토질을 지닌 호주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세계 유명와인 생산의 반열에 일찌감치 오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개인의 역사 역시 ‘만약’이라는 가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헌터벨리를 돌아보며 가장 가슴 아프게 느꼈던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와이너리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죽음의 흔적들이었습니다. 길가에 우뚝 선 전봇대나 가로수 혹은 가로등에 달아 놓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화환이었습니다. 몇날며칠 된 것도 있지만 때로는 오늘 아침 꽂아 놓은 듯한 싱싱한 꽃다발은 그 지점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은 자식이나 가까운 친척, 친구들을 추념하기 위해 달아 놓은 것인데 와이너리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와인 시음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 날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갔더라도 마지막 한 잔의 와인을 더 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지만 그런 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포도밭의 풍경과 특색 있게 지은 와이너리 건물과 친절한 스태프와 나름대로 최고라고 주장하는 맛과 향을 지닌 수많은 와인과 그 와인을 둘러싼 로맨티스트의 삶 근처에는 이처럼 세상과의 작별도 공존하고 있다는 게 그저 아이러니할 뿐입니다.


 

 
 

그런 우울한 생각을 접기 위해서 서둘러 찾아간 곳이 페퍼 트리(Pepper Tree)와이너리입니다. 페퍼 트리는 작지만 제가 이제까지 둘러본 와이너리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던 포도원입니다. 중세 귀족의 정원처럼 잘 가꿔진 포도원은 한 쪽으로 포도밭을 거느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방금 깎은 듯한 잔디밭이 고르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내려와 병아리처럼 자갈자갈 뒹구는, 바둑돌이 깔린 주차장을 지나자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정원의 아름드리 수목 사이로는 통나무집이 한쪽 문을 열어 놓은 채 기다리고 있더군요. 열어 놓은 문이니 아무나 들어가도 상관없겠지요. 해서 안으로 드니 지난겨울에 때다 말았는지 벽난로 앞에는 작은 수레에 통나무가 수북이 담겨 있었고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상쾌한 느낌을 주는 걸 보니 사계 중에서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페퍼 트리 와이너리는 다른 곳과는 달리 여성 와인 컨설턴트가 서빙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와인 잔이 주렁주렁 거꾸로 매달린 스탠드 테이블로 다가가자 소매를 접어 반쯤 걷어 올린 흰색 셔츠 차림의 그녀가 이화(梨花)의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를 물씬 풍기며 다가오더군요. 그녀의 금발은 옅어서 그런지 지적이며 격조를 더했고 우아했습니다. 하지만 마침 두어 개의 앞가슴 단추를 풀어 놓아 교과서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계단을 오를 때도 발끝으로 한 번에 두어 개씩은 거침없이 뛰어오를 것 같은 싱싱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첫 번째로 권해준 것은 자신을 닮은 2005년도 산 샤도네이입니다.

 

 

 
 

 

“천연의 과일 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오크통 속에서의 숙성 기간을 6개월로 줄였어요.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오크통 안에서 숙성시키면 샤도네이 고유의 맛과 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페퍼 트리의 샤도네이는 신 맛과 단 맛이 적절히 배합된 우아한 와인으로 풍광이 아름다운 헌터벨리와 오렌지 지방의 용암지대와 남부호주 우라톤불리의 석회암지대 등 세 곳의 샤도네이 품종을 섞어 만든 싱싱한 와인입니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복합적인 과일향이 나는 게 특징인데 비린 해산물을 드실 때 함께 하면 좋은 술이고요...”


평소 제 개인적인 와인 취향은 레드이고 그 중에서도 강하고 묵직한 쉬라츠를 선호하지만 오늘처럼 햇볕이 쨍쨍하게 비추는 날에는 페퍼 트리의 여자 와인 컨설턴트를 닮은 가볍고 산뜻한 금빛의 샤도네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