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酒客)들의 선호에서 단연 막걸리가 대세가 된 지도 꽤 오래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입맛이란 간사하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막걸리 하면 들일 하다 참에 곁들이는 농주, 아니면 막노동 뒤에 갈증과 허기를 함께 달래는 술로 홀대(?)하거나 주머니 사정이 얄팍할 때에 술 고픔을 면하는 싼 술로 치부해온 게 언제였더냐 싶게 요즘엔 반주로 의례 막걸리를 찾기 마련이고 심지어 격조 높은 정상 간 공식 만찬에 건배주로까지 그 격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정한 벗들과 어울린 산행에 한 땀 흘리고 하산한 후 점심상에 곁들이는 막걸리 한 잔의 맛이라니… 왜 좀 더 진작 이런 맛과 멋에 눈뜨지 못했을까, 아쉬울 정도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독주에 편향된 음주문화에서 벗어나면서 가장 대중적인 소주의 도수가 점점 내려가는 추세더니 이제 막걸리 특유의 부드럽고 시원한 맛에 눈뜬 주객들의 입맛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양조기술의 발전이 맞물려 상승작용이 빚어낸 결과로 보입니다.
‘막걸리’란 그 이름부터가 서민적이고 친근해서 좋습니다. 용수 박아 맑은 술[淸酒]을 떠내고 난 뒤 ‘막 걸러낸’ 술이라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막국수, 막김치, 막장, 막소주, 막회 등 음식뿐 아니라 막사발, 막일, 막노동, 막춤 등에서 보듯 우리말에 ‘막’이란 접두사가 붙으면 얼핏 조악(粗惡)하고 성글어 세밀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들을 이르는 것 같지만, 한편 그것은 민초(民草)의 오랜 생활 속에서 생겨나고 농익어 친숙해진 것들로 좀 거칠고 정제(精製)를 벗어난 그 파격(破格)의 멋이 삶속에 깊이 침전된 정감을 동반하여 그만큼 더욱 애착이 가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격식과 체면을 내려놓고 툭 터진 마음으로 입가에 술방울을 묻혀가며 먹어도 되는 술, 그런 술이 막걸리입니다.
막걸리는 탁주(濁酒), 탁료(濁?), 백주(白酒), 또는 탁배기(濁白?)나 (왕)대포 등 다양한 이름으로 아주 오랜 옛적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농경문화권 생활사 속에 깊이 뿌리박혀 관혼상제의 의식이나 제의(祭儀)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 삶의 희로애락과 풍류에 동반해왔으며, 유구한 주신(酒神)의 역사로 보건대 어떤 술이 한동안 사람들 입으로부터 좀 멀어졌다 가까웠다 하는 기복이야 한갓 사람들 변덕스런 구미가 출렁이는 일시적 고저장단에 불외한 것이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우리의 술맛에 눈을 떠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며 신토불이로 돌아선 것일 수도 있고 글로벌 시대 문화(culture)와 반문화(anti-culture)의 트렌드 코드가 춤추는 변화의 작은 물결일 수도 있겠지만 작금의 막걸리 기호의 바람은 오래 갈 것으로 보이며 실로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 선인들의 막걸리 예찬의 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하지요. 자신의 집 당호(堂號)까지 백주당(白酒堂)이라 할만큼 막걸리를 좋아했던 숙종 때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한 절조 높은 선비 이세화(李世華1630-1701)는 그의「白酒堂記」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습니다.
白髮之白兮 白酒之白兮 (백발지백혜 백주지백혜) 爾能適我悃兮 (이능적아곤혜) 玉盤珍羞 難辦千金價兮 (옥반진수 난판천금가혜) 瓦樽缶飮 正宜茅茨下兮 (와준부음 정의모자하혜) 以吾之白得爾之白 (이오지백득이지백) 白酒兮白酒 (백주혜백주) 庶幾使虛室而長白 (서기사허실이장백)
백발의 흰빛이여, 막걸리의 흰빛이여 너 내 마음에 꼭 드는구나. 옥쟁반의 진수성찬은 천금의 값이라 장만할 수 없으나 막사발에 마시는 술이야 초가집에 마땅하리. 내 흰빛과 너의 흰빛 어울리니 막걸리야, 막걸리야 빈 방에 늘 흰 빛 가득 들게 하기를. 그는 그냥 막걸리를 즐기고 찬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에 더하여 막걸리의 백(白)에 의미를 부여하여 청백(淸白)의 뜻을 끌어와 빈 방에 흰 햇살이 들 듯[虛室生白] 마음을 비우고 맑게 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선조 때 재상을 지낸 박순(朴淳1523-1589)이 백운산 자락에 살고 있는 조준용(曺俊龍)의 초당을 찾아갔다가 지은「訪曺雲伯」의 제2수에 보면.
靑山獨訪考槃來 (청산독료고반래) 袖拂秋霞坐石苔 (수불추하좌석태) 共醉濁醪眠月下 (공취탁료면월하) 鶴翻松露滴空盃 (학번송로적공배)
푸른 산 나 홀로 벗을 찾아와서는 소매의 가을 안개 털고 돌이끼에 앉았네. 막걸리에 함께 취해 달빛 아래 잠드니 학 퍼득여 솔 이슬이 빈 술잔에 떨어지네. 둘이 의기투합하여 시를 짓고 시국을 한탄하며 술독을 다 비우고 대취하여 달빛 아래 잠들었는데, 소나무 위에 잠을 청하던 학의 날갯짓으로 솔잎에 맺힌 이슬이 후드득 빈 잔에 떨어지니 막걸리에서 송학(松鶴)이 빚어내는 송로주(松露酒)로 이어지는 정취가 이 아니 선경인가 합니다.
술에 얽힌 시를 들면서 청빈했던 황희 정승(1363-1452)의 참으로 목가적인 시조 한 수를 아니 보고 지나칠 수는 없지요. 대초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듯드르며 벼 뷘 그르에 게는 어이 나리난고 술 익자 체 장사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여기에다 박목월의 「나그네」에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을 빌어다 오버랩하면 때는 술맛 나는 늦가을 석양녘 기막힌 정경이 됩니다. 외치고 지나가는 체 장사 소리에 문득 익은 술독이 생각나서 걸러낸 막걸리에 볼 붉은 대추와 주워온 알밤에다 논게 잡아 담근 게장을 안주 삼아 기울이는 백주일배(白酒一杯)의 맛이 그 얼마나 조촐하고 담박(淡泊)합니까.
이렇게 막걸리 얘기를 쓰다 보니 입에 침이 고이고 목이 컬컬해옵니다. 먹다 남겨 냉장고에 넣어둔 막걸리 병을 마저 비우고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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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생. 인간의 편의를 추구해 건설기술 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토목공학도. 결과적으로는 지구를 흠집 낸 업보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환경, 인류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