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

라벨속에 숨어있는 염원과 사연

石泉 2011. 6. 10. 14:45

[박찬일의 와인이야기] 라벨속에 숨어있는 염원과 사연

라벨은 와인의 얼굴이다. 비슷비슷한 와인의 맛과 향, 색깔이 각기 다른 라벨에 의해 개성을 부여받는다. 사실 라벨이 없다면 100만 원짜리나 3만 원짜리나 맛의 차이를 못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라벨은 그래서 와인의 옷이자 날개다. 당연히 업자들은 멋지고 의미 있는 라벨을 만들려고 한다.

 

대체로 프랑스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고수한다. 유명하기 때문에 특별히 눈길을 끌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이미지답게 개성이 가득 넘친다. 호주와 칠레 등은 신대륙인데도 클래식한 라벨이 더 많다. 새로운 와인이라는 것이 이 세계에서는 핸디캡인 까닭이다.

라벨에는 프랑스든 신대륙이든 많은 사연이 담긴다. 한 번쯤 들어봤을 프랑스 최상급 와인인 무통 로칠드에는 ‘나는 한때 2등이었다’는 문구를 적어 놓는다. 현재는 1등급인데 과거를 잊지 말자는 다짐으로 읽힌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오히려 강하게 어필한다. 광고 마케팅에도 비슷한 기법이 있지 않은가.‘우리는 결코 1등이 아닙니다’는 카피를 만든 기업이 여럿 있다.

 

칠레산 인기 와인 중에 1865가 있다. 골프 마니아 사이에서는 ‘18홀을 65타에’라는 염원(?)을 담아 선물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실제 이 숫자 때문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이 숫자는 생산회사의 창립연도다.

 

그런데 서울 강북의 어떤 저택에 도둑이 들었는데 수많은 고가 와인을 놓아두고 이 와인만 없어졌다. 주인은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도둑이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1865년산 와인’으로 착각했을 거라고 짐작한 까닭이었다. 실제 1865년산 와인은 유통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아마 식초가 되어버렸을 터.

 

또 다른 칠레 인기 와인 카실레로 델 디아블로는 이 와인을 둘러싼 전설을 말하고 있다. 자꾸 와인이 없어지는 걸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지하창고에서 숨어 있었는데 정말 도둑이 들었다. 이때 귀신소리를 내서 도둑을 쫓았다는 전설이다.‘악마의 와인저장고’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탈리아 와인은 라벨도 특이한 게 많지만 이름도 그렇다. 테스타마타(Testamatta)라는 고급 와인이 있는데‘미친 머리’라는 뜻이다.  거의 미칠 지경으로 맛있는 와인이라는 뜻도 되고, 와이너리 오너가 미치광이처럼 독특한 콘셉트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뜻도 되겠다. 실제 이 와인은 소수의 숭배를 받는 저주받은 걸작을 뜻하는 ‘컬트와인’으로도 불린다. 2008년 10월 <와인 스펙테이터> 선정 ‘올해의 이탈리아 와인’ 1위에 뽑혔다. 30만 원대의 고가다.